전기차는 정차 자체로는 배터리를 거의 쓰지 않지만, 캐빈 히터는 켜 둔 시간만큼 계속 전력을 소모한다. PTC 히터는 시간당 5kWh 안팎을 써 정체 2시간이면 주행거리 수십 km가 사라질 수 있는 반면, 열선시트는 같은 시간에 그 10분의 1 수준만 쓴다. 내 차에 히트펌프가 달렸는지, 난방을 열선시트와 열선 핸들로 대체할 수 있는지 확인하면 정체 구간의 소모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먼저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 내연기관차는 정체 구간에서 공회전만으로도 연료를 계속 태운다. 전기차는 다르다. 바퀴가 멈춰 있으면 구동 모터가 쓰는 전력은 사실상 0에 가깝다. 몇 시간을 서 있어도 그 자체로는 배터리가 주행할 때처럼 줄지 않는다.
배터리를 갉아먹는 진짜 범인은 공조장치다. 히터, 에어컨, 열선처럼 승객을 위한 장치는 차가 멈춰 있어도 켜 둔 시간만큼 전력을 끌어 쓴다. 추석 귀성길은 냉방이 주된 부담이지만, 전기차에서 전력을 더 크게 먹는 쪽은 겨울철 히터다. 정체가 길어질수록 이 차이는 벌어진다.
Photo by J Z on Unsplash
전기차 난방의 기본은 전기 저항으로 열을 내는 PTC 히터다. 소비전력은 외기온과 설정에 따라 대략 2~5kW를 오간다. 바깥이 영하로 떨어져 5kW로 돌아가면 한 시간에 5kWh를 쓴다.
이 5kWh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올 수 있다. 소형 전기차 기준으로 고속 주행 15~20km를 갈 수 있는 양이다. 정체에 2시간 갇혀 히터를 세게 틀면, 움직이지 않고도 주행거리 30~40km어치가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주행 실험에서도 난방을 넉넉히 틀면 전비가 26% 나빠졌다. 1km당 소모가 245Wh에서 309Wh로 늘었다.
같은 전기차라도 난방 방식에 따라 소모가 크게 갈린다. 히트펌프는 바깥 공기의 열을 끌어와 실내를 데우는 방식이라, 넣은 전기 1만큼 열 2~3을 만든다. 냉난방 효율을 뜻하는 COP가 0~15도에서 2.0~3.2에 이른다. 반면 PTC는 전기를 그대로 열로 바꾸기 때문에 효율이 1을 넘지 못한다.
이 차이는 겨울 주행거리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한 실측에서 정격 300마일 전기차가 영하 근처에서 히트펌프로는 약 230마일, PTC로는 약 203마일을 달렸다. 손실이 각각 23%와 32%였다. 내 차에 히트펌프가 달렸는지 먼저 확인해 두면, 겨울 정체에서 얼마나 조심해야 할지 가늠이 선다.
정체 구간에서 가장 효과적인 절약은 공기를 데우는 대신 몸을 데우는 것이다. 캐빈 히터는 실내 공기 전체를 데우느라 kW 단위로 전력을 쓰지만, 열선시트는 좌석당 수십에서 수백 W면 충분하다. 앞좌석 두 개와 열선 핸들을 모두 켜도 대체로 1kW를 넘지 않는다.
캐빈 히터가 5kW를 쓸 때 열선시트 한 개는 그 12분의 1 수준만 쓴다는 비교가 있다. 몸이 직접 닿는 곳을 데우니 따뜻하다고 느끼는 속도는 오히려 빠르다. 정체가 예상되는 구간이라면 히터를 낮추고 열선을 먼저 켜는 편이 합리적이다.
이번 추석에도 한국도로공사는 하루 600만 대가 넘는 차량이 고속도로로 쏟아질 것으로 봤다. 정체는 피하기 어렵다. 다만 전기차라면 멈춰 선 시간보다 그동안 무엇을 켜 두느냐가 도착지에서의 잔여 배터리를 가른다.